곽산황아
서라국의 황태녀 황여안. 담 너머 들리는 아름다운 가락에 마음을 빼앗기다.
어쩌면, 나의 미련한 연모의 시작은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 선 당신을 눈에 담은 순간부터였던 것 같다.
그저 귀에만 담아 둘 것을. 지나쳐 갈 것을. 호기심이 뭐라고 담을 넘어 당신을 보았고, 눈에 담았고, 어리석게도 마음에 품었다. 그 아름다운 가락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 채.
혼인 후 초야를 거부하는 당신을 보며 알았다. 당신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만들었던 그 가락이 사랑하는 여인을 위한 곡이었다는 것을.
봄날에 부는 바람처럼 온화하던 당신의 눈동자에 나를 향한 원망이 비쳤다. 그날 나는 결국 당신에게서 도망치고 말았다. 비겁하게.
그렇게 남보다 못한 부부로 지낸 지 어언 5년이 되던 해. 나는 당신을 놓아주기로 했다.
* * *
“가지 마십시오.”
5년을 한결같이 차갑던 사람이다.
“저조차 몰랐습니다. 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, 대관절 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. 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.”
그랬던 이가 내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.
다른 이도 아닌 당신이.
“해서 후회합니다.”
고아하던 당신이.
도도한 달님 같던 당신이.
“잘못했습니다.”
내 앞에서 무너지고 있었다.
“그러니 제발 그리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보지 말아 주십시오. 저를 지나치지 말아 주십시오.”
그토록 간절했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.
내가 당신을 놓으려 할 때가 돼서야. 당신은 나를 보기 시작했다.
국제표준도서번호(ISBN) 979-11-669-9373-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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